아이누는 일본 선주민의 하나로 주로 홋카이도에서 그 문화를 이루어 왔습니다. 물고기 수렵과 식물 채집을 생활의 양식으로 삼아 자연과 함께 북쪽의 대지에서 삶을 영위해 왔습니다. 가무이(신)에게는 각각의 역할이 주어져 있는데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 동물이나 식물, 지형, 물건으로 모습을 바꾸어 아이누 세계에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따라서 자연 속에서 가무이와 아이누는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관계로, 아이누는 자신들도 자연의 일부로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자연 속에 살아온 아이누의 정신은 현대의 물질 문명 속에 사는 우리에게 자연과의 공생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큰 가치로운 것입니다.
히가시에조일지 (홋카이도대학 부속도서관 소장)
에도시대 에조치를 여행하던 일본인은 기타마에부네라는 범선을 타거나 해안선을 걸어다닐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에조치의 현관문이던 마츠마에. 혼슈에서 온 여행자가 그곳을 지나 태평양 동쪽 해안을 향했을 때 처음 맞닥뜨리던 난관이 바로 에리모 미사키였습니다. 구시로·네무로·치시마열도를 향하던 배와 여행자에게 세찬 바람과 성난 바다는 위험하기 그지없는 해역이었습니다. 막부의 관리와 선원이 지리와 날씨에 훤한 에조치 토박이인 아이누에게 길 안내를 부탁했을 장면이 눈에 선합니다. 아이누와 함께 여행의 안전을 기원했다는 기술이 남아 있습니다.
에도시대 에리모 미사키를 여행한 사람들이 많은 문장을 남겼습니다.
- 에리모 미사키에서는 아이누가 신에게 바치는 공물 ‘이나우’를 세우고 신주를 올린다.
<에조일기> (기무라 켄지 1799년)
- 모노쿠네(암초지대 앞부분에 있는 암초)에는 다시마가 많이 나지만 아이누는 이를 에리모 님의 수염으로 여겨 예로부터 채취하지 않았다.
<무오 동서에조 산천지리 취조일지> (마츠우라 타케시로 1858년)
이렇듯 다시마를 생산해야 했던 아이누였지만 신성한 지역에서는 다시마를 따지 않았다고 나와 있습니다. 에리모 미사키가 아이누의 성역의 장소였음을 여기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이누에게는 자연지형이나 자연현상에도 가무이가 존재했습니다. 지명은 그 장소의 특징적인 지형이나 자연현상에 따라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예를 들어 홋카이도 각지에 산재하고 에리모의 어원이기도 한 엔룬(엔룸)은 ‘튀어나온 머리’라는 뜻에서 튀어나온 지형인 곶(일본어로 ‘미사키’)에 붙여집니다.